우리는 매일 생각을 하며 일생을 보내고 있지만, 가끔 내가 진짜 명확하고 확실한 생각을 갖고 살아가고 있는지 의심이 들 때가 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은 누군가에게 의해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닌지 혹은 내가 갖고 있던 생각들 전부가 틀리고 잘못된 것은 아닌지 궁금해진다.
만약 이런 의문의 꼬리표가 당신을 따라다닌다면 , 바출라프 스밀(Václav Smil)의 이야기가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가 당신에게 ‘명확한 생각을 하기 위한 네 가지 원칙들’을 알려준다.
빌 게이츠가 가장 좋아하는 과학자, 바츨라프 스밀 (Václav Smil)
바츨라프 스밀 (Václav Smil)은 잘 알려지지 않은 체코 계 캐나다인 환경 과학자이자 정책 분석가였다. 그러던 그는 빌 게이츠에 의해 이름이 언급되면서 가장 영향력 있는 과학자 중 한 명으로 급부상하였다. 빌 게이츠는 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을 했다. (1)
어느 누구보다 바츨라프 스밀 교수의 책들을 읽으며 정말 많은 것들을 배웠습니다. 저는 그의 30여 권에 달하는 그의 모든 책들을 다 읽었죠. 분명하게 말씀드릴 수 있어요. 그는 살아있는 작가 중 제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에요.
스밀 교수의 많은 책들은 에너지와 환경, 식량, 인구, 경제, 역사, 공공정책 등 광범위한 분야를 다루고 있다. 한국에는 현재 ‘에너지란 무엇인가‘, ‘새로운 지구를 위한 에너지 디자인‘, ‘숫자는 어떻게 진실을 말하는가’ 등의 책들이 출판되었다.
스밀교수가 집필한 책들을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다.그가 연구하는 분야가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민감하다는 사실을. 그렇기 때문에 그는 늘 주관적이고 독단적인 시각에서 현상을 보는 경향을 경계해 왔다. 그리고 그만의 냉철하고 날카로운 시각으로 여러 어려운 난제들의 원인과 해결책을 찾아내왔다. 그는 말한다. 자신만의 소신있는 원칙으로 언제나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관점을 유지하고 있다고.
그렇다면 그가 지켜온 원칙들은 무엇이 있을까? 이제 본격적으로 알아보자.
명확한 생각을 하기 위한 첫 번째 원칙
다양한 분야의 많은 책을 폭 넓게 읽기
명확하고 분명한 생각을 갖기 위해서는 정확하고 신빙성 있는 자료를 바탕으로 한 이성적인 사고가 필요하다. 정확하고 신빙성 있는 자료 중 가장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책일 것이다. 스밀 교수는 74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일 년에 80권 이상의 책을 읽는 다독가(多讀家)다. 그는 다양한 분야의 책을 골고루 많이 읽음으로써, 다른 사람의 생각과 관점을 보고, 듣고, 교류하는 과정을 꾸준히 해왔다. 이런 과정을 통해 그는 아집이나 편견에 사로잡히는 것을 피할 수 있었고 끊임없이 새로운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그리하여 그만의 명확하고 냉철한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스밀 교수는 독서를 하려면 핸드폰 사용시간을 줄여야 한다는 조언을 해주었다.
“저는 책을 많이 읽는 편이에요. 지난 50여 년 동안 매년 80권 이상의 책을 읽죠. 제가 태어날 땐 핸드폰, 컴퓨터, 인터넷이 없던 시대예요. 그래서 책을 읽으면서 시간을 보냈죠. 그게 제 가장 친한 친구였어요. 참 운이 좋은 편이죠. 저는 지금도 핸드폰이 없어요. 요즘 사람들은 많은 시간을 페이스북에 자신의 일상을 올리거나 , 다른 사람의 일상을 보며 시간을 흘려 보내죠. 그렇게 시간을 보내니 책을 읽을 시간이 없는 건 당연합니다.”
명확한 생각을 하기 위한 두 번째 원칙
불확신한 세계를 현실성 있는 시선으로 바라보기
스밀 교수가 대학을 다닐 당시만 해도, 많은 대학생들이 유행처럼 마르크스(Karl Marx)를 맹신하고 너도나도 공산당원이 되었다. 그러나, 스밀 교수는 공산당원이 되는 것을 거절했다. 그는 마르크스의 사회주의 경제모델 (Socialist Economic Models)에서 강조한 ‘모두가 평등한 파라다이스‘라는 말이 뜬 구름 잡는 헛된 이야기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였다.
1970년대 말, MIT 젊은 과학자 네 명이 연구 끝에 성장의 한계(The Limits to Growth)라는 책을 출판했다. ‘성장의 한계‘는 지속 가능한 미래의 가능성을 점치는 책이다. 이 책은 컴퓨터 시뮬레이션 모델 분석을 통해 유한한 자원 공급이 지구 환경에 미칠 영향과 지수 경제 및 인구 증가에 대한 전망했다. 이 책은 출판 후 정치, 경제에 큰 영향을 미쳤다. (‘성장의 한계’에 대한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면 제주의 소리, 불편한 진실, 부활한 ‘성장의 한계’의 40년을 읽어보길 바란다.)
스밀 교수는 이론에 바탕을 둔 모델을 철저히 믿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마르크스의 사회주의 경제모델을 신봉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을 대하듯이, 회의적이고 삐딱한 태도로 ‘성장의 한계’를 비판했다.(2)
“제가 그 책을 읽어보니 순 말도 안 되는 엉터리더군요. 책에 나온 컴퓨터 시뮬레이션 모델은 구조가 너무나 간단했고, 가설로 쓰였던 것들은 너무 편협하게 한쪽으로 치우쳐 있었습니다. 제가 책에 나온 컴퓨터 모델을 기반으로 이산화탄소가 온실 효과에 끼치는 영향을 연구해봤더니, 전제나 가설에 따라서 그 결과가 천차만별로 나왔습니다. 즉, 이 컴퓨터 시뮬레이션 모델이란 게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처럼 완전히 엉터리였습니다.
스밀 교수는 겸손이란 단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마르크스 경제 모델’나 ‘성장분석 모델 이론’을 토대로 인류의 미래를 점치거나, 우리가 당면한 과제의 해결책을 찾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론을 통한 모델’의 맹신이야말로 현실을 정확히 바라보는 우리의 눈을 가리고 우리의 생각을 혼란하게 만드는 원인이라고 경고한다.
“우리는 모든 사건과 현상을 공식화나 모델화시켜 쉽게 해석하려는 경향이 있어요. 그리고 그 공식이나 모델에 맞춰서 앞으로 일어날 일을 대입하고 근거 없는 섣부른 결론을 내죠. 그러나 현실을 그렇지 않아요. 우리는 ‘불확실의 세계’에 살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해요. 저는 단지 그 복잡한 현상을 이해하기 위한 도구를 만들고 그에 맞게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결과를 찾아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할 뿐이에요.”
스밀 교수의 생각은 불확실성에서 확실성을 찾는 지금의 많은 전문가들의 관점과 상당히 다르다.
부동산이나 증권가에서 요사이 널리 유행처럼 퍼져있는 머신러닝, 빅데이터, 데이터 마이닝 등을 활용한 예측, 동향 분석, 전망 등은 흡사 위에서 말한 컴퓨터 시뮬레이션 모델과 비슷해 보인다. 스밀 교수가 강조한 것처럼 세상에 정말 확실한 것, 우리가 정확히 예측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삶에서 존재하지 않는다. 생소하고 난해한 이론을 들먹이는 예측, 동향 분석, 전망 등의 현혹되기 쉬운 단어에 속지 않는 현실적인 자세도 물론 필요하다.
명확한 생각을 하기 위한 세 번째 원칙
돈, 명예에 목숨 걸고 살지 않기
스밀 교수는 명성과 부 보다, 지적인 겸손과 모르는 것은 솔직히 모른다고 인정하는 겸허한 자세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의 삶은 단순하고, 핸드폰이 없으며, 여타 매체와의 인터뷰를 싫어한다. 그는 빌 게이츠의 친구이지만, 빌 게이츠를 비즈니스 세계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명성이나 부를 위한 인맥으로 활용하지 않는다.
“빌 게이츠 덕분에 저는 스위스 비밀계좌를 아무런 조건 없이 만들 수 있게 되었어요. 그러나 우리의 관계가 순수하길 바래요. 저는 아무것도 도움을 바라지 않아요. 아주 작은 것도 말이죠.”
경제학이나 교육학에서 가끔 쓰이는 캠벨의 법칙(Campbell’s law)이 있다. 미국의 사회심리학자이자 실험 연구자인 도날드 캠벨(Donald Campbell)의 이름을 딴 이 법칙은 “어떤 계량적인 사회 지표이건 사회적인 의사결정에 더 많이 사용하면 할수록, 그 지표는 부패의 압력을 더 많이 받게 되고 원래 모니터링하려고 의도한 사회적 과정을 보다 더 왜곡하고 부패시키기 쉽다.”는 내용이다.(3) 좀 더 쉽게 말하면,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관리자가 직접 참여하여 보상을 주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문제의 보상받기에만 집중한 나머지 문제의 본질을 왜곡하고 바꾼다는 내용이다. 아직 이해가 안 된다면 몇 가지 예를 들어주겠다.
스밀 교수는 빌 게이츠와의 인관 관계에 있어서, ‘캠벨의 법칙’이 쓰일 어느 공간도 허용하지 않는다. 만약 스밀 교수가 빌 게이츠의 명성과 재력을 이용하기 위해 밀접한 친구관계를 맺으려고 지속적인 노력을 했다면 그들의 관계가 절대 지금과 같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빌 게이츠를 세상에서 가장 돈많은 갑부로만 생각하지 않았고, 그의 명예와 부를 이용하여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높이려 하지 않았다. ‘친구’의 본질을 홰손하고 변질시키려 하지 않은 것이다. 그의 완고하고 고집있는 인간관계와 검소하고 단순한 그의 삶에서 우리는 그가 왜 명확한 생각을 갖고 있는지 깨닫게 된다.
명확한 생각을 하기 위한 네 번째 원칙
흑과 백의 이분법으로 생각하지 않기
우리는 한쪽으로만 기울어진 믿음과 생각에 빠지면 거기에서 헤어 나오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우리가 그렇다고 믿었던 생각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사람들이 생긴다면, 그 믿음의 기울기는 몇 배로 더 커진다. 게다가 그 믿음은 절대 굽히지 않는 자신만의 목숨과도 같은 신념이 되어버린다.
스밀 교수는 이러한 위기의 순간이 있었지만, 현자답게 이 위기를 슬기롭게 헤쳐나갔다. 그의 책 ‘Should We Eat Meat?’ (고기를 먹어야 하는가?) 는 채식주의자와 육식주의자 모두에게 공격을 받았다. 양쪽 모두 스밀 교수의 정체성을 확실히 할 것을 종용했다. 그러나 현명한 우리의 교수는 두 극단주의자에게 이런 두 가지 전제가 든 문장을 알려줬다.
1) 고기를 먹어도 되나 2) 많이 먹지 않는 것이 좋다.
” 육식주의자는 ‘적당히 고기를 먹자.’는 나의 말을 대단히 싫어하죠. 채식주의자는 ‘고기를 먹는 것은 아무 문제없다.’는 내 말에 불만이 많죠. 육류엔 풍부한 단백질과 필수 아미노산, 칼슘, 철분 등의 무기질이 들어있어서, 적당히 고기를 섭취해야 건강한 삶을 살 수가 있어요. 그러나 우리는 고기를 너무 많이 먹어요. 그게 문제인 거예요. 아시아권에선 고기를 조그맣게 썰어서 야채와 같이 수프를 만들어 먹는 것이 보통이죠. 그러나 서양권에선 햄버거 패트나 스테이크로 고기만을 섭취하다보니 콜레스트롤 수치가 높아지고 많은 성인병이 걸리는 거예요. 제 말의 분명한 결론은 ‘고기를 먹어도 되나 많이 먹지 말자.’는 것이죠.”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본의아니게 왼쪽이나 오른쪽 둘 중 하나에 속해야하는 난감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그리고 왼쪽과 오른쪽에서 피아식별을 확실히 하기 위해, 이솝우화에 나오는 양다리 걸친 박쥐가 되기보다는 어느 한쪽에 속해야 할 것을 강요받는다. 그러나 어느 한쪽에 치우치면 우리는 결코 명확한 생각을 가질 수가 없다. 스밀 교수는 우리에게 동전에는 앞면과 뒷면만 있지 않고 얇은 옆면도 있는 사실을 알려준다. 동전의 옆면을 고르고 박쥐가 되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자신만의 명확한 생각을 갖기가 어렵다.
마무리 – 많은 영감과 감동을 주는…
언제나 글을 쓸 때 관련 인물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많이 찾아보고 그가 쓴 책을 읽어보려고 노력한다. 그중 바츨라프 스밀 교수의 일화와 인터뷰는 나에게 많은 영감과 감동을 주었다. 그가 말한 조언은 생각보다 복잡하지도 어렵지도 않았다.
명확한 생각을 갖기 위해선 복잡하고 어려운 것들을 단순하고 순수하게 받아들이기, 그리고 모르는 것을 떳떳이 인정하고 불확실한 것에 현혹되지 않기, 이분법적인 사고에 갇히지 않기, 이해타산적인 인관관계를 정리하기 등 바쁜 현재를 사는 나에게 절실히 와닿는 조언이었다.부디 당신에게도 작게나마 울림이 되는 조언이 있었기를 빈다.
출처
- 1) Charles Chu, A Few Principles for Thinking Clearly, Medium, 2018/8/2
- 2) Voosen, P., Meet Vaclav Smil, the man who has quietly shaped how the world thinks about energy Science Magazine, 2018/5/1
- 3) 이재경, 교육 비전, 착시와 맹시를 피하라!,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 2017/4/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