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 앞에서 당당하게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그것도 언제든 비판과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사람들이 다섯, 열 혹은 백 명 이상이라면 그 상황은 잠시도 있기 힘든 지옥과도 같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언젠가 반드시 꼭 한 번은 자의든 타의든지 간에 발표를 해야만 한다.
만약 발표 능력이 좋다면 걱정 없다. 어디서든 인정을 받고 자신에 대한 호감을 쉽게 높일 수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렇지 못하다면 자신감을 잃게 되고 자신이 한 단계 높게 도약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릴 수 있다. 이렇게 중요하기에 ‘발표 잘하는 방법’을 다룬 블로그, 강의, 책 등이 밤하늘의 별만큼 많은 것은 당연하다.
그렇지만 밤하늘의 별 중 은하수처럼 아름답고 밝게 빛나는 별이 있는가 하면, 눈을 크게 뜨고 한참을 쳐다봐야 형태를 알아볼 수 있는 흐릿한 별이 있다. 마찬가지로 ‘마법같은 놀라운 발표 방법’이라고 나와 있는 것들 대부분은 그다지 새롭지 않을 뿐더러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만약 도움이 될 듯해 보여도 실상은 득 보다 실이 큰 경우도 많다.
이번에는 How to Give a speech와 Fearless Speaking의 저자인 게리 제랄드(Gary Genard)가 쓴 ‘이대로만 하면 망치는 5가지 프레젠테이션 비법’을 소개해보려고 한다.(1)
재미있게도 이 방법들을 그대로 따라하면 100% 발표를 망칠 수 있다. 그러니 이 방법들을 하지 않는다면 반대로 설득력있고 성공적인 발표를 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더불어 여기에 소개된 잘못된 방법을 마치 비법인것 처럼 소개하는 잘못된 콘텐츠도 직접 찾아보았다. 엉터리 정보로 독자를 기만하고 잘못된 길로 인도하는 악마의 속삭임을 직접 읽어보며 썩소를 날려주는 재미도 나름 솔솔 할 것이다.
1. 프레젠테이션 법칙을 완벽하게 따르라.
혹시 ’10/20/30 파워포인트 법칙’을 들어봤는가?
10장의 슬라이드, 20분 미만, 그리고 글자크기는 30. 아! 그리고 거기에 6개의 글머리 기호(bullet points).
이런 근본 없는 프레젠테이션 법칙에만 집중하다 보면 정작 프레젠테이션의 목적인 이야기를 설득력 있게 말할 수 없게 된다. 세계 최고의 발표가 가득한 TED에 가보라. 프리젠테이션 형식에 집착한 발표가 몇개나 되는가? 정말 훌륭한 프리젠테이션은 흥미로운 이야기를 재미있게 말한다.
PowerPoint는 단지 이야기를 잘 풀게 도와주는 시각적인 도구에 불과하다. 형식에 발목 잡히면 말하고자 하는 생각을 쉽게 전달할 수 없게 된다. 그러니 이런 법칙이라고 불리던 것을 잘개 깨서 분리수거함에 버려두자.
2. 발표문을 완벽히 암기해서 토씨 하나 안 틀리고 그대로 말하라.
완전하고 완벽하게 서술된 발표문을 며칠 밤을 새워 암기해서 단어 하나도 틀리지 않고 완벽하게 말할 자신이 있다면 일단 당신의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그러나 미안하다. 이대로열심히 노력한 발표는 망하는 지름길로 논스톱 직행이다.
당신의 청중들은 당신이 얼마나 알고 있는지 혹은 당신이 얼마나 말을 잘하는지 알고 싶어서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당신만이 유일하게 갖고 있는 뭔가를 같이 공유하기 위해 그들의 시간을 기꺼이 헌납한 것이다.
충분한 연습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기계적으로 완벽하게 복사해서 붙여넣기한 발표는 할 필요는 없다. 개요와 말하고자하는 요점을 분명히 정하여 머리속에 정리하고 핵심 단어만 메모지에 간단히 적어서 발표에 들어가도 충분하다. 즉흥적이고 돌발적인 상황을 리드하여 당신만의 진면목을 보여준다면 그 프레젠테이션은 청중들에게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최고의 발표가 될 것이다.
3. 매번 문장이 끝날 때마다 한 명씩 눈 맞춤(eye-contact)을 해라.
또 다른 엉터리 법칙인 ‘한 문장에 한 사람'(one-person-for-one-sentence)이다. 이것은 한 문장을 말하고 청중 한 명과 눈 맞춤을 하는 것이 좋은 청중의 반응을 이끌어 낸다는 법칙이라는데…
잠시 생각해보자. 매번 한 문장씩 말할 때마다 일일이 청중 한 명의 눈동자를 찾아 맞추는 번거로움을 말이다.
발표는 생각과 이야기를 호소력 있게 말하는 것이다. 문제는 생각이 세 문장안에 들어가 있을 수 있고 반대로 여러 개의 이야기가 하나에 문장에 응축되어 표현될 수도 있다.
매번 문장이 끝날 때마다 청중과 눈 싸움을 하려고 시도하지 말라. 그대신 청중 전체와 눈을 맞춘다고 생각하라. 이 방법이 더욱 효과적이고 모두와 자연스럽게 소통하는 방법이다.
4. 가벼운 농담으로 발표를 시작하라.
청중을 휘어잡기 위해서 발표가 시작되면 최소한 전체 시간의 4분의 1 이상을 할애하여 가벼운 농담이나 일화를 말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아마 이 주장을 한 사람은 회사 임원이나 대학 교수 앞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해보지 않았음이 틀림이 없다.
시간이 촉박한 살얼음판 같은 장소에서 전체 시간의 1/4을 써가면서 농담을 하면 누가 활짝 웃어주면서 들어줄 준비를 하겠는가? 더욱이 유머가 발표하는 내용과 상관이 없다면 그 발표자의 미래는 뻔하다.
분위기를 전환을 위한 농담은 위험이 너무 크다. 성공하면 본전이지만 실패하면 순식간에 바보가 된다. 하지만 이 모든 위험을 감수하겠다면 발표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일화를 말하는 게 좋다.
5. 초조하거나 불안할 경우 옷을 입지 않거나 속옷 차림의 청중을 연상하라.
앞줄에 앉아있는 사람들이 옷을 입지 않거나 속옷 차림이라고 연상하면 떨림과 긴장감이 순식간에 치료된다는 발표계의 민간요법이다.
옷을 입지 않은 청중을 연상하면서 그 청중의 얼굴을 보면 되려 당황하게 되고 발표에 집중하지 못하지 않을까? 특히 그 상대방이 나와는 다른 이성이라면 불안감과 초조함은 더 심하면 심했지 덜 하지 않을 것이다. 참고로 고용 노동부 자료에는 (당신의 윤리가 허락하는 한에서!)라고 강조해서 말한다. 웃긴다.
이런 얼토당토한 민간요법보다 청중이 내 말을 편하게 잘 들어주는 친한 친구로 생각하고 말을 하는 게 더욱 효과적이다. 관객 전부가 당신의 말을 귀기울여 들어주고 진심으로 응원해 주고 있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그런 생각만으로도 당신 안에 있던 잠룡이 꿈틀대고 일어나 떨림과 긴장감을 순식간에 잡아 삼킬 것이다.
마무리 – 당신의 ‘최고의 발표’는 언제였습니까?
한국에서 잠시 문화 해설사로 일할 당시 조선시대 궁궐 건축 양식을 전공하신 교수님의 수업을 운 좋게 들은 적이 있다. 불과 20여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한참을 지난 지금까지 그때의 여운이 잊히지 않는다. 지나치게 말을 길게 하지 않고 학생들과 대화하듯 설명하는 그의 모습. 지루할 틈 없이 궁궐 부시와 잡상의 사진을 보여주며 마치 전래동화를 이야기하듯 강연하는 모습 등 그야말로 발표자가 반드시 갖춰야 하는 모든 덕목을 그때 모두 목격했다.
최고의 발표는 많은 양의 정보를 단순히 잘 전달하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남들보다 더 돋보이기위해 많은 사람들 앞에 서서 마이크를 잡는 것도 아니다. 진심으로 자신이 전달하는 바를 명확히 보여주고 청중이 완벽하게 받아들였다면 그 발표는 최고라고 말할 수 있다.
부디 위의 5가지 팁이 도움이 되었길 빈다. 그리고 언젠가 누군가에게 영원히 잊혀지지 않는 ‘최고의 발표’를 보여줄 당신을 여기서 언제까지나 응원하겠다.
출처
- Gary Genard, Debunking 7 Common Public Speaking Tips That Do More Harm Than Good, Fast Company, 2014/1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