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적이다. 혼란스럽다. 내 일생 모두를 바쳤던 직장에서 해고 통보를 받았다. 그렇게 열심히 온몸이 부서져라 일했는데 이런 쓰레기 취급을 받다니. 회사는 나의 삶의 의미이자 목표였다. 회사 안에서 나는 인정받는 사회인으로 대접 받아왔다. 돈을 벌어 가족을 먹여 살리는 어엿한 가장이라는 자부심도 있었다. 회사만이 내가 아는 유일한 사회였고, 직장동료가 내 유일한 친구였다. 하지만 이제 아니다. 회사를 떠난 지금 나를 인정해주고 알아주는 사람이 그 누구도 없다. 나는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직장 잃은 당신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무엇이 지금의 위기에서 당신을 구해줄 수 있을까?
오늘은 ‘실직의 스트레스와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6가지 전략’을 알아보려고 한다. 이 글이 작게나마 당신에게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직업의 사회적, 심리적 의미
직업이 자신의 인생에서 얼마만큼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 사람마다 다른 견해를 갖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직장 생활이 돈을 버는 수단 외에도 사회적 관계를 맺게 해주며, 일상을 구조화해주고, 자아 정체성을 찾게 해주는 핵심 역할을 한다는 것에 크게 동의한다. 그래서 사회적, 심리학적으로 직업을 개인의 행복과 웰빙에 있어서 필요한 요건 중의 하나로 보는 경향이 크다.
그런데 만약 자신의 정체성과도 같은 직업을 잃게 된다면 어떨까? 간단히 말해 직업을 잃으면 삶 자체가 불행해진다. 실제 심리학 연구 결과에 따르면, 실업 그리고 비 정규직 집단은 직장인들보다 정신 건강, 생애 만족, 가정 만족 등의 주관적 웰빙 수치와 신체 건강 점수가 모두 낮게 측정되었다. 그렇지만, 실직 상태에서 재취업에 성공한 사람들의 경우 모든 수치가 눈에 띄게 향상되었다.(1) 그만큼 직업이 우리 인생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생각보다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다.
장기화된 실직이 나에게 미치는 영향
실직을 경험한 사람들은 육체적·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해 우울한 기분에 시달릴 뿐만 아니라 불안, 초조, 신체적 불편감, 인지기능 저하, 수면장애 등 다양한 이상 증상을 겪고 있다. 대전을지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유제춘 교수는 실직자의 심리적 상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우리나라 사람이 해고나 파면에 대해 느끼는 스트레스 지수는 중병에 걸리거나 중상을 입은 것보다 훨씬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에 따라서는 일자리를 잃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만으로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아 불안장애나 우울증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 실직,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가장 큰 사건 중 하나
심리학 분야에서 실직은 중병 혹은 사랑하는 가족의 죽음과 같은 커다란 심리적 충격을 가져다주는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가장 큰 사건 중 하나’라고 보고 있다.(2) 실직자에 냉담한 사회적 시선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실직자’에 대한 사회의 부정적 정서는 마치 직업을 잃는 것이 사형 선고를 받은 것 마냥 반응한다. 그래서 실직자라는 ‘사회적 낙인’은 내가 정부 혹은 가족에게 경제 및 심리적으로 의존하는 비천하고 쓸모없고 존재라는 인식을 강화 시킨다.
◼ 실직, 자아존중감을 떨어트려
과거 취업자로 일했던 자신과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현재의 자신을 비교하는 동안 자아존중감은 점차 낮아지게 된다. 이렇게 실직으로 인한 ‘자아존중감의 하락’은 생각보다 위험하다. 자신감과 자부심이 점차 사라져 버리면 자연스레 그 빈 자리에 무기력감과 패배감이 들어선다. 자신의 능력을 스스로 깍아내려 새로운 도전을 두렵게 만드는 부정적인 감정이 커지면 커질수록, 자존감 저하, 상실감 그리고 절망감 등도 팽배해간다. 결국 실직의 해결을 위해 필요한 구직 행위나 재훈련 등의 과정을 포기하고 만성적인 실직자로 전락하게 된다.(3)
◼ 실직,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같아
실직은 단순히 개인에게 경제적 고통만 안겨주는 것이 아니라 우울, 초조, 불안 등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경험하게 한다. 이러한 정신적 피로에서 오는 신경쇠약 증상이 지나치면 반사회적 행동, 약물 남용 더 나아가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있다.(4)
◼ 실직, 가족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쳐
실직은 가족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직장을 잃은 남편의 무기력과 분노 등의 부정적 감정은 아내와 가족들은 그대로 옮겨간다. 아내는 실질의 고통을 분담하는 과정에서 오는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하며, 부부 사이의 갈등은 더 깊어져간다. 또한 자녀들은 아버지의 부정적 모습을 통해, 자신 또한 저렇게 될 것이라는 막연한 미래에 대한 분노와 불안을 무의식적으로 학습한다. 결론적으로 실직은 개인 뿐만 아니라 가족, 더 나아가 모든 사회 구성원 모두의 사기를 저하시키고, 삶의 만족도와 질을 떨어트린다.(5)
실직에 따른 직업성 우울증- 가족의 따뜻한 이해와 배려 필요
해고, 실직 등의 스트레스로 인한 우울증은 우울한 기분뿐만 아니라 ▲불안 ▲초조 ▲신체적 불편감 ▲기억력이나 집중력 저하 ▲수면장애 ▲짜증과 신경질 등 우울감과 별로 관계가 없어 보이는 여러 가지 신체의 이상 증세를 동반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본인 뿐만 아니라 가까운 가족들조차 우울증 위험을 초기에 감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우울증 증상을 치료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우울증 증상을 겪고 있는 본인이 자신의 심리상태를 인지하고 적극적인 치료를 하고자 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하지만, 직장 혹은 생계로 인한 스트레스는 환자 스스로 근본 원인을 제거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가족의 도움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가족의 따뜻한 이해와 배려가 스트레스 강도를 줄이는데 실질적 도움을 준다. (6)
실직으로 인한 우울증세 – 자가 진단 테스트
자신의 우울증은 어느 정도일까? 여기 실직으로 인한 우울중 증세를 판단하는 자가 진단 테스트가 있다. 우울증의 선별검사로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 ‘CES-D 척도’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테스트는 ▪정상 ▪경증의 우울증 ▪중등도의 우울증 그리고 ▪중증의 우울증의 4단계로 나타나도록 설계되었다. 테스트 후 우울증이 의심된다면 가까운 병원에 문의 해보기를 바란다. (7)(8)
주의사항
자가 진단 테스트는 심리학회 자료를 기반으로 만들어졌지만, 개인의 우울증 증세를 정확히 진단하는데 분명한 한계가 있다. 따라서, 개인의 정확한 심리상태를 알고 싶다면 반드시 정신과 전문의 진단이 요구된다.
실직의 스트레스와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6가지 전략
앞서 언급했듯이, 직업은 자존감, 소속감, 자아 정체성뿐만 아니라 개인 웰빙에도 큰 영향을 준다. 하지만, 실직을 하게 되면 세상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 같은 깊은 상실감과 절망감의 늪에 빠져 헤어 나오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면 실직의 위기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뷰티크 리더십 개발 회사, Next Step Partners의 수석 코치이자 창립 파트너, 레베카 주커(Rebecca Zucker)는 기고문 [When You Lose Your Job — and It’s Your Whole Identity]에서 실직을 극복하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바로 ‘자존감의 회복 그리고 자신의 정체성을 확보하는 것’이라고 강조하여 말한다. 이제 그녀가 말하는 ‘직장 잃은 당신에게 필요한 전략 6가지 방법’을 알아보자.(9)
직장 잃은 당신에게 필요한 전략 1 – 당신의 오랜 친구와 연락하라.
태어나면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만들어간 소중한 인간관계는 내가 어떠한 존재였는지 잘 보여주는 거울과도 같다. 바쁜 직장 생활로 자신의 존재를 까맣게 잊어버렸다면 이번 기회에 오랜 친구들을 만나 자신을 발견해 보는 시간을 갖자.
소꿉친구, 초등학교부터 대학교 동창생, 그리고 옛 직장 동료들까지. 이들 모두는 ‘그때 당시의 당신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는 소중한 사진과도 같은 존재다. 그들은 당신이 미쳐 발견하지 못한 자신만의 가치를 보여줄 것이며, 당신의 앞날을 위해 기꺼이 멘토가 되어줄 것이다.그들의 조언이 지금껏 미쳐 생각 못한 새로운 길을 개척해 줄 수도 있다. 자신이 지금껏 갇혀있던 상자에서 스스로 나오기란 무척 어렵다. 누군가 상자를 부셔줄 사람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사람이 당신곁에 늘 존재해 왔다. 바로 친구라는 존재로…
직장 잃은 당신에게 필요한 전략 2 – 자신의 정체성을 시험하라.
당신의 정체성은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것인가 아니면 자신이 직접 만들어 간 것인가? 직장이라는 사회적 조직에서 만들어진 정체성이 사라진 지금 당신은 누구라고 정의 내릴 수 있는가? 누군가의 아들, 누군가의 남편 혹은 누군가의 아버지 그 외에 당신을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까?
실직은 그동안 자신이 누구라고 믿고 있었던 정체성을 시험받는 시험대와 같다. 지금까지 직장에서 만들어진 자신의 이미지를 벗어던져야만 한다. 그래야 비로소 내가 누구인지 본인 스스로 의문을 가질 수 있게 된다. 과감히 도전해야 할 용기는 그 지점에서부터 시작된다. 잊지 말아라. 직장을 잃은 것 자체가 당신의 존재를 사라지게 만든 것은 결코 아니다.
직장 잃은 당신에게 필요한 전략 3 – 다양한 활동을 시작하라.
일에서 삶의 의미와 목적을 찾는 사람들은 기꺼이 다른 삶의 영역을 희생하는 경향이 있다. 여기에는 인간관계, 취미, 자원봉사 등이 포함된다. 이제 더 이상 자신의 삶을 희생할 필요가 없다.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누구를 위해서가 아닌 자신을 위해 쓸 기회가 생겼다.
새롭게 시간을 보낼 계획을 세워라. 새로운 관계를 구축하고, 기존 관계를 강화해가라. 그동안 미쳐 돌보지 못했던 가족을 챙겨라. 자신이 꿈꿔왔던 여행을 가자. 다양한 활동을 시작하라. 무료강좌에 등록하라. 무상교육을 신청하라. 지금까지 배우지 못했던 것들을 다시 배워보라.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확장하라. 일을 하지 않아 불안했던 마음이 잠시나마 진정될 것이다.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다양한 활동과 도전을 해보는 것이다.
직장 잃은 당신에게 필요한 전략 4 – 미래의 자신을 상상해보라.
우리의 정체성은 결코 변하지 않는 정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진화하고 바뀐다. 생각해보라. 10년 전 당신이 생각했던 10년 후 모습 지금과 같은지. 하지만, 아쉽게도 우리는 현재의 모습이 고정되어 영원하고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편견에 사로잡혀 있다. ‘지금 직장을 잃었으니 다음에도 잃을 것이야.’ ‘마땅한 직장을 찾지 못하니 다음에도 못 찾을 것이야.’ ‘실력이 없으니 계속 실력이 없을 것이야.’ 등 고정형 사고방식으로는 절대 지금의 상황을 해결할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지금부터 5년 후, 혹은 10년 후에 나는 과연 어떠한 사람이 되고 싶은가?” 자신이 되고자 하는 사람이 미래의 자신이라고 굳게 믿어라. 이러한 노력은 고정형 사고방식으로부터 벗어나게 해 준다. 또한 당신의 행동을 원하는 방향으로 전환시켜 궁극적으로 당신이 좀 더 능동적이고, 계획적이며, 건설적인 사람이 되도록 만들어 줄 것이다.
직장 잃은 당신에게 필요한 전략 5 – 자신의 가치를 입증하라.
직장에 모든 인생을 걸 수 있었던 사회는 종말을 고했다. 직업이, 회사가 곧 그 사람의 인격과 신분을 대신해주던 시대는 끝났다.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희석해지고 일의 개념이 달라진 현재. 자신의 가치는 본인 스스로 입증해 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급변하는 이러한 시대 흐름 속에서 자신의 가치를 입증하기 위해 무엇을 시작해야 할까?
미국 미래학자, 윌리엄 브리지스(William Bridges)는 『직장 혁명 시대의 자기 경영』에서 다음과 같은 요소와 질문이 자신의 가치를 입증하는데 도와줄 것이라고 말한다.(10)
지금 내가 가장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정말 가장 잘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어떤 사람이며 어떤 상황에서
가장 효율적이고 만족스러운 성취도를 보이는가?
내 인생 경력 중 어떤 것이 내게 유리하게 작용하는가?
직장 잃은 당신에게 필요한 전략 6 – 도움을 요청하라.
실직이라는 인정하기 싫은 현실 때문에 지금 현재 지치고, 힘들고, 불행하다면 당장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라. 가족, 지인, 친구에게 자신의 힘든 상황을 솔직히 털어놓아라. 실직으로 인한 심각한 우울증을 겪고 있다면 정신과 의사에게 상담을 받아라.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정부 민간단체의 도움을 요청하자. 힘들다고 말하지 않으면 그 누구도 몰라준다. 절대 도와달라고 부탁하지 않으면, 그 누구도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않는다.
마무리 – 구조조정, 실직, 해고 당신만 당하지 않았다.
작은 위로가 될 수 있을까? 구조조정, 실직, 해고를 당한 건 결코 당신만이 아니다. 오늘도 당신을 포함한 많은 직장인들은 하루 사이 갑작스러운 해고 통보를 받고 실직자가 된다. 그렇다고 그들 모두가 무능력해서 혹은 개인의 큰 잘못으로 직장을 잃은 것이 결코 아니다. 시대가 그리고 사회가 그들의 직장을 빼앗아간 것이다.
특히나 코로나19라는 괴이한 사회현상과 고용 안정을 만들어내지 못한 사회 시스템 부재. 이러한 외부적 요인이 직업을 빼앗아가는 주요 원인이였다. 그리고 또 다른 우리가 모르는 위험이 언제 다가올지 모른다. 그러니 실직이 자신의 잘못 때문이라고 절망해 할 필요는 전혀 없다. 그저 받아들이면 될 뿐이다. 그리고 담대하게 이 상황을 이겨내면 된다. 해가 뜨기 전 새벽이 가장 어두운 법이다. 부디 당신의 인생에 새로운 해가 뜨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출처
- 1) Maysent, M., & Spera, S., Coping with job loss and career stress: Effectiveness of stress management training with outplaced employees, Washington, DC: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1995/8
- 2) McKee-Ryan, F. M., Song, Z., & et al., Psychological and physical well-being during unemployment: A meta-analytic study, Journal of Applied Psychology, 2005
- 3) 정은석& 강상경, 실직이 자아존중감에 미치는 영향, 서울 대학교 보건사회연구, 2015
- 4) 탁진국, 실직상태 지속여부에 따른 정신건강 변화: 종단적 연구. 한국심리학회지: 건강, 2015
- 5) 류경희, 남편의 실직에 대한 아내의 경험 연구. 한국가정관리학회지, 2005
- 6) 박정렬 기자, 실직에 대한 두려움도 극도의 스트레스 유발…가족 도움 절실, 중앙일보, 2020/11/30
- 7) 이산, 오승택, 류소연 et al., 한국판 역학연구 우울척도 개정판(K-CESD-R)의 표준화 연구, 정신신체의학, 2016
- 8) Depression test, Depression.org
- 9) Rebecca Zucker, When You Lose Your Job – and It’s Your Whole Identity, Harvard Business Review, 2021/2/17
- 10) 윌리엄 브리지스, 직장 혁명 시대의 자기 경영, 세종서적, 199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