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 조선’.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이 나오지 않는 시대. 부모님의 재산과 빽이 기본적인 성공을 보장하는 시대. 우리는 더 이상 희망이 없는 이러한 시대를 ‘헬 조선’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이런 세상 속에도 자신의 불우한 환경에 좌절하지 않고 어릴 적부터 마음먹었던 꿈을 이루기 위해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온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좌절과 실패 속에서 ‘성공의 페달질’을 멈추지 않았다. 자신만의 노력으로 모든 불리한 조건을 극복하여 성공을 이룬 이들. 우리는 그들은 가리켜 ‘성공한 흙수저’ 또는 ‘이 시대의 진정한 영웅’이라고 말한다.
자기계발서의 단골 소재이자 주인공인 그들. 그들은 늘 이렇게 말한다. “죽을 만큼 노력했더니, 없던 운과 기회도 찾아온다. 그러니 너희들도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도전하라.”
그러나,
‘신화 속 영웅’과 같은 이들이 누구에도 절대 말하지 않는 슬픈 비밀이 있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속 자신 뒤에 길게 뻗은 검은 그림자. 과연 그들이 감추고 있는 검은 그림자는 무엇일까?
삶에 있어 진정한 성공과 행복의 의미를 찾고 계신 분들, 천편일률적인 성공 원칙만 되풀이하는 ‘우화식 자기계발서’에 지친 분들에게 신선한 읽을거리가 될 것이다.
‘흙수저로 태어나 금수저’가 된 이들의 성공 조언
생부모에게 버림받고 입양된 A씨, 사업 파트너의 배신으로 한순간에 거지가 된 실패자 된 B씨, 첫 직장 부도 후 옮긴 회사마다 무시를 당했다는 C씨. 이들은 처음부터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흙수저’였다. 그럼에도 이들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버티는 ‘끈기와 근성’으로 남들 다 부러워하는 억대 연봉의 사업가, 맨손으로 엄청난 부를 이룬 자수성가형 갑부,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혁식적인 기업의 대표가 되었다. A는 스티브잡스, B는 교육 스타트업 업체- 이준엽 한국 카이스 대표, C는 SK네트웍스 대기업 간부- 윤승환 팀장이다.(1)
이들은 다음과 같은 공통된 조언을 하면서 당신도 마찬가지로 나처럼 ‘흙수저에서 금수저가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성공한 흙수저’가 공통으로 갖고 있는 그것
열약한 외부적 환경 조건을 극복하고 학업, 직업, 재정 면에서 성공을 거둔 사람들. 심리학에서는 노력으로 불리한 조건을 극복한 사람들은 모두 공통된 필수 자질이 있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러한 자질을 “회복 탄력성(resilience)”이라고 일컫는다. 그렇다면 ‘회복 탄력성’이란 무엇일까?
김주환 연세대학교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는 그의 저서『회복 탄력성』에서 국내 최초 ‘회복 탄력성’이란 개념을 제시했다. ‘회복 탄력성’은 단순히 반드시 성공해야겠다는 의지로 설명이 부족하다. 오히려 이 자질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상태에서 자기 자신에 대한 깊은 성찰을 통해 뚜렷한 목적의식과 방향성을 제시하는 힘이다. 김주환 교수는 역경에 굴복하지 않고 성장하는 사람들은 모두 높은 ‘회복 탄력성’을 지니고 있다고 분석한다.
‘성공한 흙수저’가 치러야 하는 값비싼 대가
이렇듯 긍정적인 의미이자 성공의 필수 요소로 여겨지는 ‘회복 탄력성’. 아무리 몸에 좋은 약도 많이 먹으면 독이 되듯 ‘회복 탄력성’에 대한 문제는 과연 없는 것일까?
지금부터 이야기의 흐름을 바꿔 본격적으로 흔한 자기계발서에서 다루지 않은 ‘성공한 흙수저’의 숨겨진 이야기를 말해볼까한다.
1997년, 조지아 대학의 진 브로디 박사(Gene Brody)는 ‘불리한 조건을 극복하려는 노력이 구체적으로 건강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연구’를 그의 연구팀과 시작한다. 그들은 불우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성공에 대한 의지가 강한 아프리카계 미국인을 대상으로 다음과 같은 실험을 진행하고 놀라운 사실을 발견해낸다.
성공한 흙수저와 존 헨리즘(John Henryism)
브로디 연구팀의 논문은 심리학계에 큰 파장을 던졌다. 사회학자와 심리학자들은 성공의 사다리를 노력만으로 올라 결실을 맺은 사람일수록 좀 더 건강한 삶을 살 것이라는 기대와 정 반대되는 결과에 놀라워했다. 관련 학자들은 비슷한 주제로 다양한 연구를 진행하였지만 모두 비슷한 결과를 얻었다. 그리고 이를 하나의 사회 현상으로 인식하고 존 헨리즘(John Henryism)이라고 명명한다.
사실 ‘존 헨리즘’이란 용어는 브로디의 실험보다 20여 년 전, 미국 전염병 전문학자 셔먼 제임스(Sherman James)에 의해 만들어졌다. 1980년대, 젊은 학자 셔먼 제임스(Sherman James)는 존 헨리 마틴(John Henry Martin)이라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 마틴은 ‘성공한 흙수저’의 완벽한 표본이었다.(2)
존 헨리 마틴은 1907년 노스캐롤라이나 주에서 소작농으로 태어난다. 평생 자신을 둘러싼 불공평하고 부당한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그는 미친 듯이 일했다. 그리고 그가 40세 때, 농지 75 에이커(약 9만 평)이라는 대토지를 소유한다. 하지만 불행이도 40대부터 죽을 때까지 고혈압, 관절염, 위궤양 등 여러 질병에 시달리며 불행한 날들을 보낸다. 마틴과의 만남 후, 제임스 박사는 그를 가리켜 ‘구조와의 싸움에서 승리한 동시에 패배한 사람’이라고 진단하고, 그의 이름을 따서 이러한 현상을 존 헨리즘(John Henryism)이라고 명칭 한다.
‘존 헨리즘’으로 고생받는 성공한 사람들
브로리 박사 연구팀의 놀라운 발표 이후, ‘존 헨리즘’은 노인 및 사회 심리학, 생리학 그리고 비즈니스 등 다양한 분야의 큰 관심과 주목을 받는다. 또한, ‘존 헨리즘’과 관련한 다양한 연구로 이 현상이 단순히 신체에 부정적인 영향만을 끼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질 그리고 정신 건강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된다.
‘존헨리즘’이라는 회색 신사집단에 사로잡힌 성공한 사람들
심리학 실험이 늘 그러하듯, 모든 ‘성공한 흙수저’가 불행하고 건강하지 못한 노후를 보낸다고 확정 지어 말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단순히 금전적이고 물질적인 성공만이 잘 살고 행복하게 사는 최고의 방법이라고 가르치는 요즘 세상에 ‘존헨리즘’과 관련된 연구는 우리가 원하는 성공은 진정 무엇이며, 성공을 위해 나는 무엇을 희생하고 있는지 잠시 의문을 가져보게 만든다.
세계 청소년 권장도서이자 스테디셀러, 미하엘 엔데 (Michael Ende)의 ‘모모’에서는 사람들의 시간을 빼앗아가는 회색 신사 집단이 나온다. 그들은 시간을 저축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만들어 사람들을 불행하고 피폐하게 만든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빼앗은 시간을 연료 삼아 존재를 이어나간다.
책 속 회색 신사는 사람들에게 인생에서의 성공이 무엇인지 강조하며 시간을 팔라고 설득한다. 남들보다 중요한 인물이 되는 것, 남들이 갖지 못한 것을 갖는 것, 더 많은 것을 소유하는 것 등 사실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성공의 이미지를 강조한다. 그리고 성공을 위해 ‘여유’ 부릴 시간 없이 거침없이 뛰고 달리라고 독촉하며 시간을 팔라고 말한다.
회색 신사 집단에게 설득당한 사람들은 매번 남들과 비교하며 부족한 자신을 채찍질한다. 그렇기에 세상에 대한 불만은 커져가고 더 이상 모든 일에 기뻐하지도 슬퍼하지도 않는다. 웃음과 눈물, 행복과 슬픔 등을 잊어버리고 ‘견딜 수 없는 지루함’이란 질병에 빠져 점점 시들어 죽어간다.
나는 회색 신사에게 인생을 저당 잡힌 사람들이 ‘존 헨리즘’을 겪고 있는 성공한 흙수저라고 생각한다. 왜 그들의 성공이라는 밝은 이면에 숨어진 비밀, 성공이 결코 행복과 건강을 가져다 주지 못할 수 있는 슬픈 진실의 이유를 이 책을 통해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나에게 다시금 질문해보게 된다.
“나는 나의 성공을 위해 무엇을 희생하고 있는 것일까?”
성공한 흙수저보다는 워라밸과 웰빙
세상에는 일종의 커다란 흐름이라는 것이 있다. 대부분 이 흐름을 따르고 그 안에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한다. 코로나라는 우리의 많은 것을 빼앗아갔지만, 가족과 친구 그리고 인생을 돌아볼 소중한 시간을 주었다.
이제 많은 이들은 처절하고 피와 땀을 흘리며 끊임없는 이어진 계단을 미친 듯이 올라가기를 멈추기 시작했다. 그들은 계단 올라가기보다 주위의 소중한 가족, 친구, 이웃들을 돌보며 지금 나에게 무엇이 더 필요한지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일까?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과 웰빙(well-being)은 젊은 세대에게 있어 삶의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실제로 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한국인 10명 중 7명이 연봉보다 워라밸을 더 중시한다고 밝혔다.(6) 빠른 세상의 변화 속에서 ‘무엇을 이루는 것 만이 중요하다.’는 삶의 가치관은 점차 다른 모습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찾고 즐거운 하루하루를 만드는 삶. 일과 생활의 균형과 조화를 이룬 삶. 이러한 가치관의 변화를 통해 우리는 존헨리즘’이라는 회색 신사 집단에게서 점차 벗어나고 있는 중이다.
마무리 – 성공한 흙수저가 겪고 있는 ‘존 헨리즘’을 벗어나…
성공한 흙수저 중 많은 이들은 고혈압과 당뇨병 등에 걸릴 확률이 상대적으로 높다. 누구보다 성공에 대한 강한 의지와 굳은 신념 그리고 근면하고 부지런한 성격이 그들의 면역체계를 파괴시키고 높은 스트레스를 받게 만들었다. 이러한 현상을 ‘존헨리즘’이라 불린다.
‘존 헨리즘’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자신의 일상에서 소소한 행복을 찾고, 자신만의 여유로운 삶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한번 ‘진정한 성공’의 의미에 대해 자신만의 답을 찾아봐야 한다.
출처
- 1) 이호승 기자, 성공 향해 뛰는 흙수저 인생선배들의 조언과 격려, 매일경제, 2017/2/7
- 2) James Hamblin, Why Succeeding Against the Odds Can Make You Sick, The Newyork Times, 2017/1/27
- 3) Logan, J. G., Barksdale, D. J., & Chien, L. C. (2014). Exploring moderating effects of John Henryism Active Coping on the relationship between education and cardiovascular measures in Korean Americans. Journal of psychosomatic research, 2014.08.
- 4) Angner, E., Hullett, S., & Allison, J. (2011). I’LL DIE WITH THE HAMMER IN MY HAND: JOHN HENRYISM AS A PREDICTOR OF HAPPINESS. Journal Of Economic Psychology, 2011/01
- 5) Fernander, A. F., Durán, R. E., Saab, P. G., & Schneiderman, N. John Henry, Active Coping, education, and blood pressure among urban blacks. Journal of the National Medical Association, 2004
- 6) 김용민 기자, 성인남녀 10명 중 7명, 연봉 보단 워라밸! 선택, 리키루쿠타임스, 202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