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피곤에 쩔어서 일찍 잠에 들어야 하지만 침대에 누워 쓸데없는 짓으로 시간을 축 낸 적이 있는가? 밤에 잠 안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일 일찍 일어나야 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잠을 미루는 것은 결코 당신만이 아니다.
‘당신은 몇 시에 주무십니까?’
만약 당신이 11시쯤 잠에 든다면 평균 사람들보다 일찍 잠에 드는 편에 속한다. 만약 12시에 침대에 눕는다면? 그건 조금 늦지만 양호한 편이다. 2019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한국인이 평일 잠에 드는 시간은 오후 11시 32분이다.(1) 한국인 평균 수면시간이 다른 OECD 국가보다 30분이나 적은 것을 고려해봤을 때, 한국인은 가장 부지런한 민족이자 가장 잠을 안 자는 민족이라 할 수 있다.(1)
그렇다면 왠지 궁금하지 않은가? 왜 우리가 올빼미족이 되어버린 것인지? 피곤에 쩔어 일찍 잠을 자야 되는 건 알지만, 우리는 왜 굳이 그 시간에 영화를 보고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하며 아까운 시간을 소비하는 걸까? 당신이 미처 몰랐던 밤에 잠 안 자고 허튼짓 하는 이유. 심리적· 사회적 측면에서 그 비밀을 파해쳐본다.
밤에 잠 안오는 이유 – 취침시간 미루기(Bedtime Procrastination)
코골이, 수면무호흡증, 불면증 등의 수면장애와는 또 다른 새로운 형태의 수면장애가 90년대 중후반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늦은 밤까지 드라마를 시청하거나, 침대에 누워 게임을 하면서 취침 시간을 미루는 새로운 형태의 수면장애는 많은 사람들을 피곤과 졸음에 찌들게 만들었다.
2014년 네덜란드 위트레흐트대학교(Utrecht University) 연구팀은 이러한 현상을 본격적으로 연구했다. 실험 참가자 177명을 대상으로 그들의 수면 습관을 철저히 조사한 결과, 실험 대상자들 중 절반이 TV, 게임, 소셜미디어 등의 다양한 유혹거리로 인해 계획했던 시간에 잠을 자지 못하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이들은 최소한 일주일에 이틀 정도 자신이 계획했던 시간에 잠을 자지 못해 낮 시간에 피곤함에 시달리는 부작용을 경험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연구팀은 이러한 수면장애의 가장 큰 문제점은 다음날 피곤할 것이라는 사실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지만, 매혹적인 놀이시간을 외면하지 못하는 점이 이러한 상황을 야기한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수면을 방해하는 강압적 환경 요인이 없는 상황에서 늦게 잠자리에 드는 행위를 ‘취침시간 미루기(Bedtime Procrastination)’라고 정의내린다.(3)
밤에 잠 안오는 이유 – 보복성 취침시간 미루기(Revenge Bedtime Procrastination)
시간은 흘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이 전 세계를 휩쓸자 ‘취침시간 미루기(Bedtime Procrastination)’에 ‘보복(Revenge)이라는 단어가 붙여진다.(4) 취침시간을 미루는 것이 ‘누군가의 보복’이라니 엉뚱하지 않은가? 그러나 중국의 직장인 구빙(Gu Bing)의 말을 들으면 당신도 고개를 끄덕이며 크게 공감하게 될 것이다.
‘보복성 취침시간 미루기’는 일찍이 중국에서는 바오푸싱뎅 아오예 (報復性熬夜)라고 불리며 젊은이들의 SNS에 자주 언급되어 왔다. 왜 중국 젊은이들은 잠을 자지 않으려는 것일까?
위의 구빙의 인터뷰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다. 그렇다. 바로 회사가 근로자 개인의 자유 시간을 침범하고 빼앗아 갔기 때문이다. 사람은 어느 정도 자기 자신만을 위한 시간이 필요로 하지만, 그 시간이 부족하게 되면 삶의 만족도가 급격히 떨어진다. 그렇기에 중국의 청년들은 어쩔 수 없이 잠을 줄여가면서까지 자신의 자유 시간을 만들어낸다. 불행한 대다수의 젊은 중국인들은 잠과 싸움을 하며 그렇게 하루하루를 연명해나가고 있다.
중국의 ‘996·715·007 문화’
사실 중국의 여러 업체들은 인력을 갈아 넣어 목표를 달성하고 성과를 내기로 악명이 높다. 그래서 ‘996·715·007 문화’라는 중국의 신조어는 2010년대 이후 초고속 성장을 질주해온 중국 IT 산업의 과중한 업무 환경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중국의 2018년 전국 조사 통계자료를 살펴보면, 열악하고 강도 높은 근무환경이 ‘보복성 취침시간 미루기’에 직접 혹은 간접적인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잘 알 수 있다.
- 중국의 2018년 전국 조사 결과, 1990년 이후 출생자의 60%가 충분한 수면 시간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5)
- 그들 중 대부분은 대도시의 거주자이며, ‘996 문화’를 만든 기술 회사들의 고용인들이다.
- CCTV와 중국 통계청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 근로자들의 평균 자유 시간은 하루 2.42시간으로 전년 대비 25분 감소했다.(6)
- 참고로, 한국의 경우에는 여가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여가활동에 할애하는 시간과 비용은 점차 증가하고 있다. 2020년 한국인의 평일 평균 여가시간은 3.7시간으로 나타났지만, 평일 희망 여가시간 4.5시간을 충족하기엔 여전히 부족한 편이다.(7)
정말 살기 빡빡하다는 한국보다 자신의 여가시간이 무려 2시간이나 없는 중국의 청년들. 그들은 자신의 여가 시간을 위해 잠을 줄여야 한다는 사실이 분명히 잘못되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열악한 근로 환경은 그들이 어쩔 수 없이 이러한 잘못된 선택을 하게 만든다.
보복성 취침시간 미루기의 심리적 원인은?
중국과 비슷한 기업 환경 속에서 일을 하고 있다면 취침 시간을 미루는 이유가 충분히 설명된다. 하지만, 그 외 다른 복합적인 심리적인 이유로 우리는 취침 시간을 미루는 경향을 보여준다.
첫 번째로 하루 종일 자신의 행동을 자제해야 하는 사람일수록, 높은 강도의 스트레스를 받는 업무를 보는 사람일수록 취침 시간을 미루는 경향이 높다. 자기 통제 부족과 힘든 업무에서 오는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자유를 되찾고 낮 시간에 소모된 감정을 힐링하기 위해 과감히 수면을 포기하는 것이다. 일찍 자는 것을 거부하여 자신에게 ‘심리적 보상’을 주는 것. 즉, 개인적인 자유와 마음의 안정이라는 심리적 욕망이 잠을 자려는 육체적 욕망보다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8)(9)
또 다른 의견도 있다. 사회적 경쟁이 심해짐에 따라, 자신이 배우고, 성취하고, 가치 있는 취미를 가져야 한다는 압박감이 수면을 갉아먹는다는 주장이다. 다시 말해 취침 시간의 지연은 ‘일과 가정에서 끊임없이 증가하는 요구의 반항’이라는 심리적 원인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수면이 건강과 성과에 중요한지 요소라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잠을 미루는 행위를 통해 작게 나마 조직 문화와 사회에 반항을 하는 것이라는 것이라고 덧붙여 설명한다.(10)
다양한 심리적 원인이 결합되어 나타나는 이런 행동에 대해 셰필드 대학(Sheffield University) 심리학 교수, 시아라 켈리(Ciara Kelly)는 일에서 자신을 분리하고, 떨어트릴 수 있는 시간이 중요하다고 말한다.(11)
코로나 사태 이후의 보복성 취침시간 미루기
코로나19 팬데믹, 많은 회사들은 재택근무 제도를 발 빠르게 도입하여 업무의 큰 유연성을 두고 있다. 하지만, 회사와 집의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일과 여가를 분리하기가 힘들어졌다. 켈리 교수는 이런 근무 환경이 ‘보복성 취침시간 미루기’를 가져올 수 있다고 염려한다.
“오랜 시간 근무하는 것 외에도 현대적 업무 방식도 문제가 있어요. 언제 어디서나 연락이 가능한 이메일과 메시지는 우리가 항상 직장에 있다고 느끼게 만들죠. 특히 코로나 이후 일상화된 재택근무는 자신만의 공간과 시간의 울타리를 좁게 만들어 버렸어요. 이는 또 다른 형태의 ‘보복성 취침시간 미루기’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마무리 – 당신이 잠 못 드는 사회
장기간에 걸친 수면 부족은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유지하는데 악영향을 끼친다. 캘리포니아 대학(University of California)의 신경 과학 및 심리학 교수, 매슈 워커(Matthew Walker)의 저서, 『우리는 왜 잠을 자야 할까 』”에서 충분한 잠으로 창의력과 기억력의 향상, 암과 치매의 예방, 우울감과 불암감의 해소 등 다양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또한, 수면이 짦으면 짧을수록 자신의 수명은 단축될 것이라며 저자는 수면 부족의 위험성을 제차 강조한다. (12)
하지만, 불행히도 우리는 쉽게 잠에 들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개인의 삶이 없는 가혹한 근로 환경과 능력이 없으면 낙오되는 혹독한 경쟁사회가 하루 중 가장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시간인 잠자는 시간을 빼앗아가고 있다. ‘밤에 잠 안 자고 허튼짓 하는 이유’를 단지 개인의 일탈이나 잘못된 습관으로만 보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이제 이를 ‘사회적인 문제’로 인식하고 회사나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개선하려는 노력이 절실히 필요하고 생각한다.
잠도 웰빙에 있어 가장 중요한 항목에 속하며, 우리는 충분한 잠을 누릴 권리와 자격이 있다. 오늘도 당신이 어느 시간, 어느 곳에 있든지 푹 주무시는 편안한 밤이 늘 함께 하길 빈다.
출처
- 1) 강유경 사회통계기획과장, 2019년 생활시간조사 결과,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20207/30
- 2) 전지원, 시간균형 관점에서 본 한국인의 잠: 다국적시간연구(MTUS) 자료를 활용한 생애주기별 수면시간 국제 비교 연구, 통계욘구, 2017
- 3) Floor. M. K, Denis. T. D., Catherine. E., et al., Bedtime procrastination: introducing a new area of procrastination, Front. Psychol, 2014/6/14
- 4) He Huifeng, Coronavirus: China’s economy unlikely to be saved by ‘revenge spending’ as worried consumers emerge from lockdowns, The Coronavirus Pandemic, 2020/4/15
- 5) Wu Yan, Beijing has the most young early birds, China Daily, 2018/3/19
- 6) Yilin Chen, Trending in China: All Work and No Play – China Complains of Long Working Hours Culture, CXTECH, 2020/8/19
- 7) 2020 국민여가활동조사2020 국민여가활동조사, 문화체육관광부
- 8) Katharina. B., Veronika. J., Too exhausted to go to bed: Implicit theories about willpower and stress predict bedtime procrastination, British of Psychology, 2019/3/10
- 9)Sabine. S, Charlotte. F., Recovery from job stress: The stressor-detachment model as an integrative framework, Journal of Organizational Behavior, 2014
- 10) 조수완 기자, 늦은 밤, 잠 못 드는 당신… 원인은?, 하이닥, 2021/3/22
- 11) Lu-Hai Liang, Many young Chinese workers prioritise leisure time over sleep after long work days – even though they know it’s unhealthy. What’s driving this behaviour?, BBC, 2020/11/26
- 12) 매슈 워커, 우리는 왜 잠을 자야 할까, 열린책들, 2019/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