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을 막는 가장 현신적인 방법은 무엇일까? 동등한 대우를 받기 위한 사회제도의 개선, 사회적 차별을 없애기 위한 법규 제정, 혹은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배려하기 위한 차별 금지 교육 정책 등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방법들은 장기적이고 지속적이으로 시간과 자본의 투자가 이루어져야 비로소 결실을 볼 수 있다.
스탠퍼드 대학의 가상 인간 상호작용 연구소장(The Virtual Human Interaction Lab at Stanford University) 제레미 배일린슨(Jeremy Bailenson)은 다른 관점으로 이 문제를 바라보고, 새로운 혁신적인 해답을 제시했다. 바로 가상현실(Virtual Reality, VR)로 차별을 막을 수 있다는 논리다. 가상현실은 무엇이고 베일린슨 교수는 어떻게 가상현실로 차별을 없앨 수 있다고 주장하는지 알아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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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현실 (Virtual Reality, VR)이란
가상현실 (Virtual Reality, VR)은 컴퓨터 등의 과학기술을 통해 실제와 유사하지만 실제가 아닌 특정 환경이나 상황 혹은 기술 그 자체를 말한다. 이때 만들어진 가상의 환경이나 상황 등은 사용자의 촉각, 미각, 후각, 시각, 청각의 오감을 통해 실제와 유사한 시·공간적 체험을 하게 함으로써 현실과 상상 간 경계를 자유로이 드나들게 한다. 다시 말해 가상현실은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및 ‘감각적 동시성(sensory synchronicity)’의 결합을 통해 사용자의 오감을 자극하며 특정 상황이나 환경을 실제로 겪은 것처럼 유사한 감정을 체험하게 하는 것이다. (출처 1)가상현실을 연구하는 배일린슨 교수
제레미 배일린슨 교수 (Jeremy Bailenson), (출처: https://news.stanford.edu/) |
스텐포드 대학의 가상 인간 상호작용 연구소장, 제레미 배일린슨(Jeremy Bailenson)은 가상 현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을 한다.
“가상현실을 체험할 때 우리 몸은 실제 경험을 하는 것과 비슷한 생리적 현상을 보여줘요. 왜냐면 뇌가 가상현실 경험을 진짜처럼 믿고 반응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가상현실은 이전에는 연구되지 않았던 새로운 미지의 영역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가상현실이 인간 행동에 얼마나 깊이 영향을 끼치는지 알아보고 있어요. 그리고 지금까지 이루어낸 성과만으로도 이 분야의 잠재력이 얼마나 무궁무진한지 놀라고 있습니다.”
차별을 막기위한 마음, 역지사지(易地思之, perspective taking)와 공감(共感,, Empathy)
하지만, 배일린슨 교수는 현실적으로 모든 사람이 공감과 역지사지의 정신을 갖기가 매우 어렵다고 설명하고 있다.
“많은 심리학자들이 다른 사람을 공감하고 그 사람의 입장이 되는 것이 차별을 줄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말을 하죠. 하지만 이게 쉽나요? 생각 보세요. 시각장애인의 고충을 이해하기 위해 일 년간 눈을 가리고 다니라고 한다면 누가 하려고 할까요? 시리아 난민의 공감을 얻기 위해 시리아 난민 캠프로 직접 가서 그들과 대화하고 직접 생활해 보기를 누가 원할까요?[post_ads]
직접 경험하지 않은 간접 경험은 어떨까요? 신문이나 사진으로 느끼는 공감과 연민은 오래가지 않아요. 내가 직접 피해를 입지 않는 남의 일인 만큼 금방 잊혀지거든요. 쉽게 말해 간접 경험으로 만들어진 인스턴트 감정은 금방 사그라들어요.”
가상현실을 통한 공감 능력 테스트
배일린슨과 그의 연구진은 가상현실(VR)을 통해 공감 능력을 가르칠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한 ‘공감 척도(Empathy at Scale)’라 불리는 프로젝트를 실시하였다. 그중 한 예로 색맹인 사람의 눈을 통해 세상을 보여주는 실험, 가상 거울로 다른 사람의 모습을 자신의 모습으로 인식하는 실험, 노인의 삶을 살아보는 실험 등 차별의 피해를 받고 있는 사람들의 고충과 감정을 공감하는 목적으로 실험을 진행했다. (출처 5)배일린슨 교수는 그의 연구에 대해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2003년 이후에 우리 팀은 VR연구를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죠. 첫 번째 연구는 대학생을 대상으로 가상 거울 앞에서 자신의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실험을 했어요. 자신이 거울 앞에 실제로 서있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 모습이 완전 다른 사람인 경험을 하는 거죠. 백인이 흑인이 되고 키가 큰 사람이 작은 사람으로, 혹은 늘씬한 미녀가 뚱뚱한 할머니로 변하는 거죠. 이 경험을 통해 자신이 신체적 차별을 받을 수 있는 약자가 되는 새로운 경험을 해요.”
가상 거울 실험의 장면
“다음으로 우리는 젊은 친구들에게 나이 든 어른들이 어떠한 차별을 받는지 경험하게 했어요. 실험 참가자 대학생들을 VR을 통해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는 경험을 하게 해 본 거죠. VR실험 후에 그들에게 노인에 대해 떠오르는 이미지를 단어를 써보라고 했는데 역시나 우리가 생각한 데로였어요. 그들은 눈에 띄게 노인에 대한 부정적이거나 나쁜 단어를 적지 않더군요.”
출처 1) 정덕환, “가상현실이 대체 뭔데 이 난리냐”고 묻는다면, Samsung Newsroom, 2018/1/18
출처 2) Andrew R. Todd, Galen V. Bodenhausen & Adam D. Galinsky, Perspective taking combats the denial of intergroup discrimination, Journal of Experimental Social Psychology, 2018
출처 3) Fourie, M.M., Stein, D.J., Solms, M. et al. Effects of early adversity and social discrimination on empathy for complex mental states: An fMRI investigation. Sci Rep 9, 2019/8/10
출처 4) Stefanie. S, Meagan, E., Laurie, T., Empathy versus evidence: Does perspective-taking for a discrimination claimant bias judgments of institutional sexism?, Siena College, 2019/1/25
출처 5) Virtual Human Interaction Lab, Becoming Homeless: A Human Experience, Stanford Univers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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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현실로 공감과 역지사지 능력을 키운다.
VR프로젝트의 여러 연구결과는 꽤나 인상적이다. 최근 실업자와 노숙자의 삶을 VR을 통해 체험한 실험에서 참가자들 중 85%가 집 없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청원서에 기꺼이 사인을 했다. 이는 책이나 TV 등 일반적인 미디어를 통해 실업자와 노숙자의 힘들고 고된 삶을 알게 된 다른 그룹의 실험 참가자들 중 청원서에 사인했던 63%보다 월등히 높은 수치였다. (출처 6)집이 차압당해 갑자기 노숙자가 된 사람의 경험을 VR을 통해 체험해본다.
(출처: Virtual Human Interaction Lab, Stanford University)
[post_ads_2](출처: Virtual Human Interaction Lab, Stanford University)
배일린슨 교수의 연구팀은 2018년에 대학교 실험실을 나와 영화제에서 관객들을 대상으로 한 규모가 더 큰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2018년 트리베카 영화 페스티벌 (Tribeca film festival)에서 콜롬비아 대학의 연구팀이 협업하여 만든 VR영화 1,000 Cut Journey를 상영한 것이다. 이 영화는 미셀 스텔링(Michael Sterling)이라는 흑인이 되어 인종차별을 직접 경험해보고 평등과 인권의 존중을 배워 사회적 참여를 유도하도록 기획되었다. (출처 7)
1,000 Cut Journey의 트레일러
“이 영화에서 관객은 미국의 사회적 약자인 흑인 남성이 되어 초등학교에서 반 친구들한테 받는 차별, 10대 때 경찰과의 마찰을 통해 겪는 차별, 그리고 성인이 되어 일자리 인터뷰를 통해 겪는 차별 등 단편적인 차별이 아닌 한 사람이 어려서부터 커서까지 겪는 다양한 차별을 모두 경험해 볼 수 있게 제작했어요.
우리는 영화 상영 후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흑인에 대한 공감과 역지사지 정신을 갖게 되었는지 면밀히 조사했죠. 그 결과는 우리가 예상했던 대로 성공적이었습니다. 이 영화를 시청했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흑인에 대한 연민과 동정심을 강하게 갖게 되었고 이중 몇 명은 인종차별 반대를 위한 사회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도 했어요.”
제레미 배일린슨 교수가 보는 VR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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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R이 마법의 요술 봉이 아니라는 것은 저도 잘 알고 있어요. 모두에게 통하지는 않겠죠. 하지만 VR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처지를 이해하고, 그들을 도와주는 것을 우리는 직접 목격했어요. 지금보다 발달된 VR 기술로 더 다양한 관련 연구가 이루어진다면, 언젠가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 속의 차별이 없어지리라고 저는 믿습니다.’
그의 자세한 강의는 [##youtube## How experiencing discrimination in VR can make you less biased by Jeremy Bailenson]에서 찾아볼 수 있다.
출처 6) Jeremy Bailenson, How experiencing discrimination in VR can make you less biased, Big Think, 2018/5/22
출처 7) C. M. Rubin, The Global Search for Education: Is Virtual Reality the Ultimate Empathy Machine for Racism?, SHINE, 2019/6/26